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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estment Research Report/Economics

'버냉키 쇼크' 실물경제도 절벽 내몰린다

'버냉키 쇼크' 실물경제도 절벽 내몰린다

[머니투데이] 입력 2013.06.22 05:18
[심재현기자 urme@]

[기업을 "회사채 뇌관" 후폭풍 영향권
가계대출금리도 '꿈틀' 소비 타격 우려]

"차입금 만기가 코앞인데 도저히 돈 만들 방법이 없습니다."



'버냉키 쇼크' 이틀째인 21일 한 중견기업 재무담당 임원이 긴 침묵 끝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수화기 너머로 막막함이 전해왔다. 2년 전 채권시장 호황 때 끌어 쓴 500억원을 상환하지 못하면 부도가 날 판이다. 그는 "웬만한 기업들은 사정이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출구전략 공식화 충격이 금융시장을 강타하면서 실물경제 절벽 우려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금융리스크가 기업과 가계로 옮겨 붙으면 그나마 회복세를 보이던 경기가 다시 금융위기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걱정이다.

이미 국내 기업 대다수가 '버냉키 후폭풍' 영향권에 들어있다. 뇌관은 회사채 시장이다. 특히 STX 사태 등으로 몇차례 얻어맞은 해운·조선·건설 등 '3대 취약업종'에 속한 기업들은 대규모 회사채 만기를 앞두고 존폐를 고민하는 상황이다.

이들 업종의 상당수가 몰려있는 신용등급 'BBB-'의 경우 3년 만기 회사채 금리가 이날 금융투자협회 최종 고시 기준 9.05%까지 뛰었다. 출구전략 공식화 이후 지난 이틀 동안의 상승폭만 24bp(0.24%포인트)다. 3년 만기로 1000억원을 조달한다고 하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이자비용이 48시간만에 7억원 이상 늘어난 셈이다.

그나마 신용등급이 나은 SK해운(신용등급 A)도 오는 26일 500억원 규모의 5년 만기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실시한 수요예측에서 기관투자자를 단 한 곳도 모으지 못했다. 발행 금리를 '버냉키 쇼크' 전 A등급 회사채 5년물의 평균금리(4%대)를 웃도는 5.10%로 제시했는데도 시장 반응은 차가웠다.

기업 입장에서 더 막막한 점은 거래 자체가 실종됐다는 것이다. 회사채보다 신용도가 뛰어난 국채마저 거래가 뜸해졌다. 시장에서는 "회사채 시장이 사실상 마비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는 웃돈을 준다고 해도 사는 이가 없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미 금리가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 증권사 채권영업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시장 수요가 부족해도 발행기업과의 '관계'를 고려해 전액 인수를 조건으로 회사채 발행을 주관했지만 시장 거래가 이렇게 말라붙으면 더 이상 '자금조달 창구' 역할을 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우량기업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CJ오쇼핑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그룹사가 줄줄이 회사채 발행을 연기하고 있다. 지난 18일 회사채 1500억원어치를 발행한 CJ헬로비전(신용등급 AA-)은 시장 수요가 200억원에 그쳤다.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금융권 대출금리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점은 기업의 고충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국채금리에 연동된 대출금리만 오름세지만 COFIX와 CD 금리까지 영향을 받게 되면 가계 부담까지 문제될 수 있다.

이정걸 KB국민은행 WM사업부 재테크팀장은 "그동안 저금리 상황에서 많은 빚을 진 가계는 금리가 약간만 올라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계기업만이 아니라 한계가계가 속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11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는 오래전부터 '화약고'로 지적된 문제다.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실질 가계부채는 1098조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52조1000억원 늘었다. 가계 부담이 늘면 소비도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추가경정예산이나 부동산 대책 등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기부양책 효과가 반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